러시아가 미국과의 냉각된 대화 채널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중단되었던 양국 간 정상회담 논의를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1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먼저 제안했던 정상회담 준비 작업을 재개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양국 관계가 여러 현안으로 경색된 상황에서 러시아 측이 먼저 대화의 문을 다시 연 것으로, 향후 미국의 반응에 따라 국제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장소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선호한다는 구체적인 입장까지 내놓으며,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이 장소에 동의한 바 있다고 언급해 논의의 구체성을 더했다.

 

이번 정상회담 재개 제안은 지난달 양국 정상이 합의했던 사안이 실무 단계에서 멈춰선 이후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전화 통화를 통해 부다페스트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이룬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형성되었으나, 이후 구체적인 의제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실무 차원의 협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되면서 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라브로프 장관의 이번 발언은 이처럼 교착 상태에 빠진 대화의 불씨를 되살리고, 정상 간의 합의를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동시에 협상 재개의 공을 미국으로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회담 재개 의사와 더불어, 라브로프 장관은 최근 미국이 제기한 러시아의 핵실험 의혹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해당 사안에 대해 미국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대화를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미국과의 갈등 현안에 대해서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러시아의 핵 정책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핵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러시아는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셈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만약 다른 핵보유국이 먼저 핵실험을 재개한다면 러시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2023년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서 천명되었던 러시아의 기본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어느 핵 강국이든 먼저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러시아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맞대응 전략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결국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은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희망하면서도, 핵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러시아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동시에 담은 다층적인 메시지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