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며 '안전자산의 왕'으로 군림하던 국제 금값이 12년 만에 가장 큰 일간 낙폭을 기록하며 급격한 조정을 맞았다. 미국 기업들의 호실적 발표로 위험선호 심리가 살아나면서 단기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 금값 역시 국제 시장의 영향을 받아 사흘 만에 11% 넘게 폭락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5.7% 급락한 온스당 4109.1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금 현물 가격 또한 미 동부시간 오후 1시 45분 기준 온스당 4381.52달러로 전장 대비 5.5% 떨어졌으며, 장중 한때 6.3%까지 하락해 2013년 이후 일간 기준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국제 금 가격은 60% 가까이 치솟으며 강세를 이어왔고, 전날에도 현물 기준으로 온스당 4381달러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업들의 견조한 3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투자 심리가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위험선호(risk-on)'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급등했던 금 시장에서 단기 차익을 실현하려는 매도세가 강력하게 촉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속정보업체 키트코 메탈의 짐 위코프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번 주 들어 시장의 위험선호 심리가 개선되면서 안전자산인 귀금속 전반에 걸쳐 약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하락세는 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날 국제 은 현물 가격은 전장 대비 7.6% 급락했으며, 백금 가격 또한 5% 이상 떨어지는 등 주요 귀금속 시장 전체가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 금값의 급락은 국내 금 시장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서 금 1g 가격은 이날 장 초반 7% 가까이 폭락하며 거래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40분 현재는 전 거래일보다 5.36% 떨어진 19만7730원에 거래되며 하락폭을 다소 줄였지만, 지난 20일 '김치프리미엄' 해소 등의 영향으로 5% 넘게 하락했던 것을 감안하면 사흘 만에 11% 넘게 폭락한 셈이다.

 

'김치프리미엄'은 국내 금값이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일컫는데, 최근 국제 금값의 급등과 맞물려 국내 시장에서도 과열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국제 금값 조정과 함께 김치프리미엄이 해소되면서 국내 금값은 더욱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금은 이자나 배당 수익이 없는 자산이므로, 미국의 실질금리가 낮아질 때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현재 시장의 모든 관심은 24일 발표될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쏠려 있다.

 

미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중단(셧다운)으로 주요 경제지표 발표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미 노동통계국은 9월 CPI 지표를 예정대로 발표한다고 공지했다. 이번 CPI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8~29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발표되는 만큼,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9월 CPI가 시장의 예상보다 낮게 나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된 것으로 해석될 경우,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시금 금값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CPI가 높게 나온다면 연준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며 금값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상 최고가 행진을 멈추고 급격한 조정을 겪고 있는 금 시장은 이제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투자자들은 미국의 경제 지표 발표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금 시장의 다음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