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35도 돌파, 에어컨 없는 영국 '비상'
영국 런던의 낮 최고기온이 5월 하순에 35도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자 현지 주거 환경의 취약성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온화한 여름 기후에 맞춰 설계된 영국 주택들은 단열과 보온에만 치중해 있어, 최근처럼 때 이른 폭염이 닥칠 경우 내부 열기를 배출하지 못하는 거대한 찜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에어컨 설치율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반복되는 이상 고온 현상은 더 이상 냉방 장치를 개인의 선택이나 사치품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런던 큐가든의 기온은 35.1도까지 치솟으며 1922년과 1944년에 세워진 종전 기록을 100여 년 만에 경신했다. 문제는 영국 전체 주택 중 에어컨을 갖춘 가구가 여전히 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축 건물조차 환경 규제에 따라 자연 환기와 차양 등 수동적 냉방 방식을 우선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기록적인 열돔 현상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이는 과거의 기후에 박제된 건축 규정이 현재의 기후 위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영국 사회는 높은 전기료와 환경적 부담, 그리고 미국식 과소비에 대한 반감 등을 이유로 에어컨 보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3년 사이 에어컨 보유 가구가 400만 가구를 넘어서는 등 인식의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폭염이 더 일찍, 더 강하게 찾아오면서 생존을 위해 벽걸이형 시스템이나 휴대용 냉방기를 찾는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다만 급격한 냉방 수요 증가는 가계의 전기료 부담을 수배 이상 폭증시키는 또 다른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전역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프랑스 일부 지역이 36도, 스페인 세비야가 38도를 기록하는 등 서유럽 전체가 거대한 열돔에 갇히면서 온열 질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폭염은 전력 수급 체계에도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졌다. 낮 시간대 태양광 발전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전력난을 방어하고 있지만, 해가 진 뒤에도 식지 않는 열기로 인해 야간 냉방 수요가 몰리면서 저녁 시간대 전력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기존의 원자력 및 화력 발전소 역시 폭염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냉각수로 사용하는 강물이나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거나 안전을 위해 출력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재생 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낮과 밤의 수급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폭염 시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저장 및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영국 정부 자문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는 현재의 주거 환경이 미래 기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과거의 유산이라고 경고하며 국가 차원의 적응 대책을 촉구했다. 단순히 에어컨 보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열 흡수를 차단하는 건축 자재 사용과 녹지 확대 등 근본적인 도시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이 더 길고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에어컨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가전제품 선택의 문제를 넘어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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