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7년 만에 산문집…“시간의 냄새 담았다”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은 김애란이 7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을 선보였다. 2002년 스물셋의 나이로 등단한 뒤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는 어느덧 문단에 발을 들인 지 25년을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에는 첫 산문집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마주한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아버지를 향한 시선이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여러 편에 걸쳐 등장한다. 김애란은 아버지와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애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 기록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취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흩어져 사라질 수 있는 가족의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었고, 훗날 형제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김애란 문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존재였다. 첫 단편집의 제목부터 <달려라, 아비>였지만, 젊은 시절 그가 바라본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쉽지 않은 대상이었다. 실제 삶을 직접적으로 옮기기보다는 허구와 상상을 활용해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를 바라봤다.
김애란은 당시에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자신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느꼈으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야기를 허구적인 방향으로 풀어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우회해 아버지를 바라본 끝에 이제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산문에서 그려진 아버지는 오랜 세월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이발소를 운영했던 그는 병으로 의식이 흐려진 상황에서도 눈을 감은 채 허공에서 가위를 움직였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일’이라고 답했지만, 떨리는 손 때문에 이제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이어졌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눈가가 젖는 모습도 책에 담겼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김애란의 시선은 인공지능(AI)이라는 동시대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아버지의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기, 그는 챗GPT와 대화를 나누며 위안을 얻었던 경험을 책에 기록했다. 가장 똑똑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AI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했고, 동시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기에 아버지는 점차 언어를 잃어가고 있었던 반면 AI는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며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애란은 처음부터 두 대상을 비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쇠락과 불완전함, 그리고 점점 정교해지는 기술의 모습이 서로 대비돼 보였다고 밝혔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과 AI의 차이는 ‘망설임’에서도 드러난다. 김애란은 과거 한 방송에서 AI와 사람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을 꼽았다. 사람의 주저하는 태도 안에는 배려와 품위가 담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후 AI 관련 강연이나 행사 요청이 이어졌지만 자신을 전문가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 고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어를 다루는 작가로서 AI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애란은 AI에 대해 기대와 호기심뿐 아니라 불안과 걱정도 함께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특정한 입장을 정해놓기보다는 우려가 조금 더 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문집의 출발점에는 작가 자신의 문학관도 자리한다. 김애란은 몇 년 전부터 자신의 ‘농도’를 조금씩 낮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썼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비워진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서고 또 다른 삶이 채워지는 듯한 순간을 경험하면서부터다.
작품 활동 초기 자신을 중심으로 한 1인칭의 세계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3인칭으로 시선을 넓히려는 변화도 나타난다. 그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분명하게 기록한 뒤 산문집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표제작 <그랬다고 적었다>에서는 글을 쓰고 읽는 행위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도 드러난다. 김애란은 글쓰기를 단순한 직업이나 취미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글을 읽고 쓰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작가 자신은 이러한 태도가 확신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 웃으며 실제로는 늘 불안과 혼란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결과물만 보면 단단한 자세로 글을 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신에게 좋은 글은 오히려 고민 끝에 붙잡게 된 생각과 마음에 기대어 완성한 글이라는 설명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그랬다’고 적는 동안 떠올린 얼굴을 향한 문장이 자리한다. 김애란은 자신의 또래 독자들이 많은 만큼 책 속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될 어려움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온 일이거나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일이라는 생각 속에서 독자의 얼굴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했다. 코트 수선과 관련된 허풍 섞인 일화를 배치해 앞부분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웃으며 책장을 덮기를 바랐다고 했다.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밝은 분위기의 흔적을 마지막에 다시 남긴 셈이다.
김애란은 책을 읽는 것을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에 비유해왔다. 집을 떠난 뒤에도 그곳의 공기가 몸에 남듯 책을 덮은 뒤에도 작품의 분위기가 독자에게 남는다는 의미다. 이번 산문집을 나선 뒤 남을 냄새를 묻는 질문에는 잠시 고민한 끝에 ‘물비린내’라고 답했다.
흐르는 강이나 바다를 다녀온 뒤 옷에 자연스럽게 배는 냄새처럼, 이번 책에는 시간이 지나며 남은 흔적이 스며 있다는 설명이다. 김애란은 세월을 강물에 빗대며 이번 산문집에 담긴 것은 결국 시간의 냄새, 물비린내나 바깥바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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